후회 없이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는 바로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제가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나도 저 사람이랑 별로 다르지 않다"였습니다. 천재 공학자가 비행기를 구하고, 미래에서 사람이 건너오는 SF 설정 안에 사실은 아주 단순하고 오래된 감정 하나가 숨어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끝내 못 한 말, 그 후회 말입니다.

후회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무게
드라마의 주인공 한태술은 천재 공학자이자 퀀터맨타임의 회장입니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위기 상황에서 기압(대기압)과 끓는점의 관계를 즉석에서 활용해 전력을 복구하고, 자석으로 회로를 되살리는 장면은 솔직히 처음엔 좀 과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캐릭터의 핵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오히려 그 장면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이 진짜로 집중하는 건 한태술이 형 태산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입니다. 퀀터맨타임의 나스닥 상장이라는 역사적인 날, 태산은 행사장에 찾아와 "그놈들이 너를 찾고 있어"라고 외쳤지만 태술은 술 취한 형의 말로 치부하고 차갑게 돌려보냅니다. 그날이 형을 본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칫했던 건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무언가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왔을 때, 저는 "지금 바빠"라는 한마디로 넘긴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실제로 힘들었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찌릿한 감각, 태술이 운전하다가, 잠들려고 누웠다가 "팍 하고 생각이 난다"고 표현하는 방식이 정확히 그겁니다.
드라마는 이 후회를 감정적 설정으로만 쓰지 않습니다. 양자 전송(Quantum Transfer), 즉 물질이나 정보를 공간·시간 경계를 넘어 이동시키는 기술 개념을 핵심 설정으로 가져와 후회가 실제로 행동이 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놓습니다. 여기서 양자 전송이란 물리학에서 양자 얽힘을 이용해 입자의 상태를 다른 위치로 복사하는 개념입니다. 드라마 안에서는 이것이 '업로드'라는 이름으로 구현되어 미래 사람들이 과거로 건너오는 수단이 됩니다.
- 태술은 "딱 한 번만 그날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반복합니다.
- 형기는 실제로 과거로 돌아와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을 함께 합니다.
- 서해는 미래의 자신이 쓴 일기장을 들고 태술을 구하러 현재로 건너옵니다.
선택의 순간, 일기장이 알려준 것
서해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운 건 그녀가 들고 온 물건 때문입니다. 수트케이스 안에 든 일기장은 현재의 서해가 쓴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미래의 서해가 미리 써놓은 것이었습니다. 일기장 안에는 "한태술을 구해라, 그 사람이 살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서해는 아버지가 그토록 "한태술에게 가면 안 된다"고 당부했음에도 일기장의 말을 따르기로 합니다.
이 설정에서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미래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위상 이동(Phase Transition)이란 물질이 에너지 변화에 의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환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이 개념이 단순한 물리 현상을 넘어 인물들의 선택이 미래를 바꾸는 방식으로 은유됩니다. 쉽게 말해 지금 이 선택 하나가 전혀 다른 미래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제가 직접 이 대목을 보면서 느낀 건, 결국 서해의 행동이 '아는 것'보다 '믿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미래의 자신이 쓴 글을 아버지의 말보다 믿기로 한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커다란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이야기를 굴러가게 만드는 엔진이 됩니다.
단속국(미래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단속하는 정부 조직)이 두 사람을 계속 쫓고, 이사장과 시그마라는 세력이 태술의 기술을 탈취하려 하는 상황에서도 서해는 계속 태술 곁을 지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 그러니까 적에게 쫓기면서 서로를 믿어가는 이야기는 진부하게 흐를 위험이 크지만, 이 드라마는 서해의 일기장이라는 장치 덕분에 "왜 이 사람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납득 가능한 이유를 내내 유지합니다.
시간여행 설정, 어디까지 납득되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시간여행 소재 드라마는 보통 설정이 복잡해질수록 이야기의 감정이 희석되는데, 《시지프스 : the myth》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설정이 복잡해질수록 인물들의 감정이 더 또렷해지는 구조였습니다.
업로드(Upload)라는 개념은 드라마 안에서 고분자 화합물을 양자 전송으로 위상 이동시키는 기술로 설명됩니다. 고분자 화합물(Polymer)이란 수많은 작은 분자가 반복적으로 결합된 큰 분자를 뜻하는데, 인체도 이 고분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결국 사람 자체를 다른 시간대로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정의 근거가 됩니다. 제가 이 설명을 듣고 나서 "아, 그래서 태산이 비행기에 부딪혔을 때 수트케이스만 남긴 채 사라진 거구나"라고 이해가 됐습니다. 다운로드 도중 오류가 나면 전송이 중단된다는 것도 이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설정이 완벽하다는 건 아닙니다. 제 경우엔 중반부로 갈수록 단속국, 시그마, 이사장, 박사장이 동시에 등장하면서 "지금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잠깐 잃어버리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분들에게는 2화까지 설정을 파악하는 데 집중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관련 공식 정보와 배경 설정은 출처: JTBC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SF 설정을 잘 쓰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그 복잡한 설정이 결국 "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5% 확률로 과거로 건너오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몸으로, 단속국에 잡힐 위험을 감수하고도 과거로 오는 이유. 드라마는 그게 단지 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 번쯤 다시 해보고 싶은 말, 하지 못한 선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시간여행 서사가 반복적으로 탐구하는 이 주제에 대해 서울대 철학과 연구 자료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SF 서사의 핵심 동력"이라고 짚은 바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시지프스 더 myth 처음 보는데 설정이 너무 어렵지 않나요?
A. 제가 직접 보면서 느꼈는데, 1~2화는 설정 파악에 집중이 필요합니다. 핵심만 기억하면 됩니다. 미래에서 사람들이 '업로드'라는 기술로 과거(현재)로 건너오고, 단속국이 이들을 잡으러 다니며, 주인공의 기술이 그 업로드의 근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 줄만 잡으면 이야기가 훨씬 수월하게 따라집니다.
Q. 서해 일기장에 나온 결혼 사진은 무슨 의미인가요?
A. 태산의 카메라에 찍혀 있던 사진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장면들이 담겨 있었고, 그 중 태술과 결혼하게 될 여자가 서해였습니다. 이 장치는 두 사람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이미 어떤 시간의 흐름 안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드라마는 이 설정을 낭만적 복선으로만 쓰지 않고, 갈림길에 놓인 태술의 선택과 연결시킵니다.
Q. 시그마가 왜 한태술을 죽이려 하는 건가요?
A. 태술이 만들게 될 업로드 기술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미래 시점에서 이 기술이 이미 사용되고 있고, 그 결과로 인한 혼란과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시그마는 그 기술 자체를 탈취하거나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통제하려 하는 세력으로 보입니다. 형기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업로드를 만들지 못하게 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Q. 태산은 정말 살아 있는 건가요?
A. 유골의 유전자와 태산의 유전자가 불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태산이 사망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과거로 건너오던 도중 다운로드 오류로 사라진 것임이 밝혀집니다. 즉 죽은 게 아니라 전송 중 실종된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 설정이 태술이 형을 계속 찾아야 하는 이유이자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 동력입니다.
결론
《시지프스 : the myth》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남긴 건 SF 설정도, 액션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단 하루도 그날 생각 안 하고 넘어간 날이 없다"는 태술의 말이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 해도, 결국 우리가 후회하는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그날 조금 더 들어줬더라면 하는 작은 순간들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제법 정확하게 짚어냈다고 봅니다.
시간여행 설정이 복잡하고 중반부에 인물 관계가 얽히는 부분에서 몰입이 흔들리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복잡함 안에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메시지가 끝까지 살아 있다는 점에서, 저는 이 작품을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까운 사람의 말을 무심하게 넘겨본 적이 있다면, 이 드라마가 아마 꽤 오래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