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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신앙의 왜곡, 선의와 폭력, 믿음의 대가)

by 음식백서 2026. 9. 8.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왜 매번 비극으로 끝날까요. 넷플릭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 2020)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거였습니다. 톰 홀랜드, 로버트 패틴슨, 세바스찬 스탠이라는 캐스팅만 보고 켰다가,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여운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신앙의 왜곡 — 믿음이 어디서부터 어긋나는가

좋은 믿음이 사람을 구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전제에 물음표가 하나 붙었습니다.

영화의 첫 번째 중심인물 윌러드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뒤 작은 마을에 정착해 가정을 꾸립니다. 그는 뒷산에 십자가를 세우고 매일같이 기도를 올리죠. 아내 샬롯이 암 진단을 받고 나서부터는 그 간절함이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아끼던 강아지 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은 솔직히 보는 내내 손이 발이 됐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짚는 핵심은 신앙(faith)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신앙이란 본래 의지와 신뢰를 기반으로 한 내적 확신을 말합니다. 그런데 윌러드의 믿음은 언제부터인가 결과를 강제로 끌어내려는 집착으로 변질됩니다.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원하는 답이 안 오면 더 극단적인 방법을 찾는 식이죠.

목사 티가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종교적 카리스마(religious charisma)를 활용해 신도들을 매혹시키는 설교자인데, 종교적 카리스마란 신앙 공동체 안에서 특정 인물이 갖는 정신적 권위와 영향력을 뜻합니다. 문제는 그가 그 권위를 리노라를 향한 착취에 이용한다는 겁니다.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가 너무 능청스러워서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가 살면서 어떤 생각에 지나치게 매달렸다가 오히려 일을 키운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옳다고 확신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확신 자체가 판단력을 흐렸던 거더군요. 윌러드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 건 그 때문이었습니다.

요약: 신앙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집착과 착취로 변질되는 순간, 믿음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먼저 해친다.

 

선의와 폭력 — 아빈의 선택이 남긴 것

부모를 일찍 잃고 홀로 자란 아빈은 이 영화에서 그나마 '좋은 쪽'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리노라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맞서고, 리노라를 망가뜨린 목사를 심판하고,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패스 부부로부터 스스로를 지킵니다. 매 순간 그의 동기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영화는 끝까지 그 선의에 면죄부를 주지 않습니다. 아빈의 발걸음마다 시신이 쌓입니다. 자경주의(vigilantism)라는 개념이 여기서 핵심입니다. 자경주의란 공식적인 법 체계 밖에서 개인이 스스로 정의를 집행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아빈은 제도적 정의가 기능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났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일한 도구가 폭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방식이 틀렸다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은 게 이 영화의 불편한 지점입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보안관 보데마저 아빈의 총에 쓰러지는 장면은 제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보데 역의 세바스찬 스탠이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잠깐 멈칫했는데, 영화는 그 말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증거를 은폐한 행위가 결국 그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은 거죠.

이 구조는 내러티브 아이러니(narrative irony)를 의도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러티브 아이러니란 인물의 의도와 실제 결과 사이의 간극을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 서사 기법입니다. 아빈이 선의로 행동할수록 비극이 쌓인다는 역설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저도 감정적으로 판단했을 때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순간이 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아빈을 보면서 "틀렸다"고 손쉽게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불편하면서도 계속 생각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 아빈은 매 선택에서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결과는 항상 죽음으로 귀결된다.
  • 보안관 보데의 증거 은폐는 '법 안의 사람'도 자경주의적 선택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 영화는 선의와 폭력의 경계를 일부러 흐리면서 관객에게 판단을 맡긴다.
요약: 선한 의도는 행동의 방법까지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빈의 여정이 끊임없이 증명한다.

 

믿음의 대가 —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영화 말미에 등장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문장이기도 합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도덕적 결정론(moral determinism)의 구조 위에 쌓인 이야기입니다. 도덕적 결정론이란 인간의 선택이 환경과 유전, 과거 경험에 의해 사실상 결정된다는 시각입니다. 윌러드의 상처가 아빈에게 전달되고, 헬렌의 광적인 신앙이 리노라에게 영향을 미치듯, 이 영화 속 비극은 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갑니다. 인물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주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에 가깝습니다.

원작은 도널드 레이 폴록의 동명 소설로, 오하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를 배경으로 한 미국 고딕 문학의 전통을 잇습니다(출처: Netflix 공식 작품 정보). 미국 고딕(American Gothic)이란 미국 남부·중부의 종교적 억압, 빈곤, 폭력을 소재로 인간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는 문학·영화 장르를 말합니다. 이 장르적 맥락을 알고 보면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가 단순히 스타일이 아니라 의도된 서사 전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캐스팅은 솔직히 처음엔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톰 홀랜드가 아빈을, 세바스찬 스탠이 보데를, 로버트 패틴슨이 티가딘 목사를 맡는다는 건 스파이더맨과 윈터 솔저가 한 화면에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직접 봤더니 오히려 그 배우들이 가진 기존 이미지를 역이용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패틴슨의 목사 연기는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수준이었습니다.

전개가 느린 편이라는 점은 분명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다 보니 중반부까지 흐름을 따라가기 버겁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영화 비평 전문 매체 로저 에버트(RogerEbert.com)도 이 작품에 대해 "야심찬 서사이지만 감정적 연결이 고르지 않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습니다(출처: RogerEbert.com). 제 경험상 1.25배속 정도가 몰입과 완급 사이 균형을 잡기 좋았습니다.

요약: 미국 고딕 장르의 전통 위에서 신앙, 폭력, 세대 간 비극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느리지만 깊이 있는 스릴러다.

 

자주 묻는 질문

Q.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원작 소설이랑 많이 다른가요?

A. 도널드 레이 폴록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영화는 소설의 주요 사건과 인물 구조를 거의 그대로 따르는 편이지만, 원작자 본인이 내레이터로 직접 참여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소설을 먼저 읽은 분들은 영화의 압축 방식이 아쉬울 수 있고, 영화를 먼저 본 분들은 소설에서 더 세밀한 내면 묘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Q. 영화가 너무 느리다는 말이 많던데, 정말 그런가요?

A. 전개가 느린 건 사실입니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교차하는 구조라 중반부까지 각자의 배경을 쌓아가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는 1.25배속이 체감상 가장 무난했습니다. 다만 후반부에서 각 인물의 이야기가 하나로 수렴되는 순간부터는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니 초반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톰 홀랜드 연기가 스파이더맨이랑 너무 다르지 않나요?

A. 오히려 그게 이 영화의 묘미입니다. 아빈은 스파이더맨과 정반대에 가까운 인물로, 밝고 유머 있는 이미지가 완전히 지워진 연기를 보여줍니다. 기존 이미지를 역이용하는 캐스팅이 오히려 효과적으로 작동한 사례로 보입니다. 로버트 패틴슨의 목사 연기와 함께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연기로 꼽을 만합니다.

 

Q. 잔인한 장면이 많아서 보기 힘들지는 않나요?

A. 폭력 묘사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자극적인 연출을 위한 폭력보다는 서사의 무게를 전달하기 위한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고어(gore) 공포물처럼 시각적 충격을 주는 스타일은 아니고, 분위기와 정서적 압박으로 불편함을 주는 편입니다. 잔인한 장면에 민감하신 분이라면 중간중간 잠깐 넘기는 구간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론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가 느낀 건 불쾌함도, 감동도 아닌 일종의 무거운 납득이었습니다. 인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그 선택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결말을 보면, 좋은 의도가 얼마나 쉽게 비극의 재료가 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제 경험에서도 비슷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확신이 강할수록, 방법을 의심하지 않게 되더군요.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저에게 단순한 스릴러 이상이었습니다. 전개가 느리다는 단점은 분명하지만, 캐릭터마다 쌓인 맥락이 후반부에서 터질 때 그 무게는 제대로 전달됩니다. 미국 고딕 장르에 관심이 있거나, 신앙과 폭력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넷플릭스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 2020) — Netflix 공식 작품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