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테르나우타 (재난 생존, 인간성, 외계 침공)
세상이 무너진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지키시겠습니까? 막연한 질문 같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에테르나우타(The Eternaut)》를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치명적인 눈, 전력이 끊긴 도시, 그리고 딸을 찾아 무너진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버지 후안. 공개 직후 높은 시청률로 시즌 2 제작이 확정된 이 작품, 직접 보면서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재난의 시작 — 하늘에서 내려온 죽음
드라마는 아무 예고 없이 시작됩니다. 평범한 저녁, 아파트에서 카드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 앞에 정체불명의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밖에 있던 이들이 쓰러집니다. 닿으면 죽는 눈. 그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작품이 설정하는 재난의 규모가 꽤 세밀합니다. 단순히 기후 재앙이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은 아마추어 무선 통신(HAM Radio)을 통해 남미 전역, 나아가 대륙 전체가 같은 상황임을 파악합니다. HAM Radio란 면허를 취득한 아마추어 무선 통신자들이 운용하는 통신 방식으로, 인터넷과 전화망이 끊긴 재난 상황에서 유일한 원거리 교신 수단이 됩니다. 실제로 큰 자연재해 현장에서 HAM Radio 운용자들이 구조 요청을 중계한 사례가 다수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American Radio Relay League).
작품 속에서 "반 알렌 벨트(Van Allen Belt)"라는 개념도 등장합니다. 반 알렌 벨트란 지구 자기장이 태양풍으로부터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를 붙잡아 형성한 방사선 띠로, 쉽게 말해 지구를 감싸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입니다. 작품은 지구 자기장이 이상을 일으켜 이 보호막이 무너지면서 방사성 입자가 지상으로 쏟아졌고, 그것이 바로 치명적인 눈의 정체일 수 있다고 암시합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또 다른 재난 SF겠지'라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 설정을 듣는 순간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 접촉하면 즉사하는 정체불명의 눈이 도시 전체를 덮음
- 전력망·통신망 동시 마비, HAM Radio만 유일한 교신 수단으로 기능
- 반 알렌 벨트 붕괴 → 방사성 입자 낙하라는 과학적 개연성 제시
- 남미 대륙 전역이 동시에 같은 재난을 맞은 광역 재앙
생존 집단의 균열 — 위기가 드러낸 인간의 본색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무섭다고 느낀 건 벌레 형태의 외계 생명체가 아니었습니다. 식량이 떨어지고 상황이 길어질수록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균열이 생겨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돕습니다. 문을 잠그고, 창문을 막고, 비닐로 틈을 메웁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우리 자원이 먼저다"와 "저 사람도 살 권리가 있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도 솔직히 어느 편이 맞는지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 부릅니다. 내집단 편향이란 위기 상황일수록 자신과 가까운 집단을 우선시하고 외집단을 배제하려는 심리적 경향으로, 자원이 희소해질수록 이 편향이 강하게 발동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드라마는 이 개념을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교과서처럼 그것을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현실적인 묘사입니다. 살면서 예상치 못한 위기가 겹쳤을 때, 저도 모르게 판단의 기준이 '나와 가까운 사람'부터로 좁아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건, 그 판단이 꼭 나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옳은 것도 아니라는 묘한 불편함이었습니다. 드라마는 바로 그 불편함을 관객에게 계속 들이밉니다.
후안의 선택 — 포기하지 않는 것의 의미
주인공 후안 살보가 드라마 내내 하는 일은 단 하나입니다. 딸 클라라를 찾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지금 생존이 먼저"라고 말하고, 함께하던 이들이 각자의 이유로 다른 선택을 내릴 때도 후안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무모하다고 느꼈습니다. 밖에 나가면 죽을 수 있는데, 왜 저러나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후안은 생존 확률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한꺼번에 문제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가장 무너지는 순간은 체력이 바닥날 때가 아닙니다. "왜 이걸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답이 없어질 때입니다. 그때 버텼던 건 결국 제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안을 보면서 그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작품이 후안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두려워하고, 판단 실수를 하고, 지칩니다. 그럼에도 계속 걷는다는 것, 그 평범함이 오히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외계 침공의 진짜 얼굴 — 원작이 남긴 메시지
시즌 1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재난의 배후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정체불명의 벌레 형태 생명체들, 그리고 그것들을 통제하는 더 큰 존재. 후안이 환영 속에서 봤던 장면들이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이야기가 단순한 재난 생존극이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1950년대 아르헨티나의 만화입니다. 군사독재 시절, 직접적인 비판이 불가능했던 시대에 작가 에르네스토 사바토와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는 외계 침공이라는 SF적 틀 안에 독재 권력에 대한 저항 의식을 녹여냈습니다. 알레고리(allegory), 즉 현실의 문제를 다른 이야기 형식으로 빗대어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이 알레고리 기법 덕분에 당시 검열을 피하면서도 독자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원작자와 그 가족들은 훗날 의문의 실종을 당했습니다. 비유로 쌓아올린 이야기가 얼마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담고 있었는지, 그 결말이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셈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는 이 원작의 맥락을 가져오면서도 현대적인 언어로 다시 씁니다. 외계 침공이 시작되어도 인간 사회 안의 배신과 협력, 권력과 저항의 구도가 작동한다는 것. 제 경우엔 이 층위를 이해하고 나서 다시 봤을 때 장면들이 전혀 다르게 읽혔습니다. 단순히 "무서운 벌레들이 쳐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겁니다.
한국 배우 아론박이 평범한 학생 파블로 역을 맡아 자연스러운 연기로 호평을 받은 것도 이 드라마의 화제 중 하나였습니다.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작품임에도 인물들의 감정이 언어 장벽 없이 전달됐다는 점에서,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가 얼마나 탄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원작: 1950년대 아르헨티나 만화, 군사독재에 대한 알레고리
- 알레고리 기법으로 검열을 피하면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
- 원작자와 가족이 군사독재 시절 의문의 실종을 당함
- 한국 배우 아론박 출연, 신인임에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호평
- 공개 직후 높은 시청률로 시즌 2 제작 즉시 확정
자주 묻는 질문
Q. 에테르나우타 시즌 2는 언제 나오나요?
A. 시즌 1 공개 직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넷플릭스가 시즌 2 제작을 바로 확정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공개 일정은 제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 공식 페이지에서 업데이트를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원작 만화와 드라마, 뭐가 다른가요?
A. 원작은 1950년대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한 만화로, 당시의 정치적 억압을 외계 침공이라는 알레고리로 풀어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는 이 원작의 뼈대를 가져오되 현대적인 연출과 캐릭터로 재구성했습니다. 원작 맥락을 알고 보면 장면 하나하나가 다르게 읽히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Q. 스페인어 드라마라 보기 어렵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라 걱정했는데, 막상 보면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자막만으로도 충분히 몰입됩니다. 오히려 아르헨티나 특유의 억양과 현장감 덕분에 생존 상황이 더 실감나게 느껴졌습니다.
Q. 한국 배우 아론박이 나온다는데 비중이 어떤가요?
A. 아론박은 평범한 학생 파블로 역을 맡았습니다. 신인 배우임에도 주변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연기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주연급 비중은 아니지만 극의 흐름에서 꽤 인상적인 장면들을 소화합니다.
결론
《에테르나우타》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외계 생명체도, 치명적인 눈도 아니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무엇을 지키기로 결심했는지, 그 결심이 행동과 얼마나 일치했는지의 문제였습니다.
재난 SF라는 장르 안에 인간 심리, 역사적 저항 의식, 가족에 대한 사랑이 함께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가볍게 틀었다가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를 찾으신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냅니다. 시즌 2가 확정된 만큼, 시즌 1을 지금 보기 시작하셔도 늦지 않았습니다.